안식월, 월급쟁이의 꿈을 위해!
2005-10-04 12:11 | VIEW : 6,191

[한겨레] 일부 기업 중심으로 도입되고 있는 안식월 휴가 천태만상
회사마다 빈부격차 있으나 재충전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ㅎ사 신아무개 팀장은 다음달 ‘안식월’ 휴가를 떠날 예정이다. 입사한 지 만 10년 된 이들에게 주어지는 금쪽같은 장기 휴가. 공백을 메워야 할 같은 팀 후배가 눈에 밟히지만, 평생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로 여겨 두 눈 꾹 감고 떠나기로 일찌감치 마음먹었다. 신 팀장은 장장 한달에 걸친 휴가 중 보름을 쪼개 꿈에 그리던 동유럽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아내와 5살짜리 딸을 대동하는 여행 경비가 대략 1천만원에 이를 것으로 보여 붓던 적금까지 헐어야 할 판인데도 마냥 들떠 있다.

자기계발비 등 수당 주기도

신 팀장은 안식월에 월급을 그대로 받는 유급제인 것도 감지덕지였는데, 다른 회사 친구의 얘기를 전해듣고선 ‘안식월의 빈부격차’가 상당함을 실감했다. 그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이는 SK텔레콤의 조아무개 과장. SK텔레콤은 해마다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초우량 기업답게 파격적인 안식월 제도인 ‘리프레시 휴가’를 실시하고 있다. 입사 10년 되는 날로부터 1년 안에 1·2·3개월짜리 휴가를 갈 수 있게 하고 근속 수당 200만원, 자기계발비 200만원 등 모두 4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휴가 기간 중 월급은 물론 그대로 다 받는다.

입사 10년을 넘긴 올해 3~5월까지 석달 휴가를 낸 조 과장은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날아가 두달 반 동안 베이징에서 아예 눌러살았다. “회사가 중국쪽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어 평소부터 중국어 공부를 할 생각이었거든요. 한국에서 미리 준비를 좀 했고, 현지에서 집중적으로 어학 공부를 했습니다.” 중국어 학원에서 4시간, 중국 대학생을 개인교사로 들여 3시간 등 하루 7시간씩 중국어를 익힌 덕에 이제 일상적인 소통에는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됐단다. 베이징의 한달 생활비는 100만원, 학원비는 10만원 수준이어서 회사 지원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그의 가족은 아직 베이징에 남아 있으며 다음달 돌아올 예정이다.

조 과장처럼 3개월짜리 안식월 휴가를 가는 예는 드물어도 1·2개월짜리 장기 휴가는 흔해져 SK텔레콤에선 안식월 제도가 정착 단계에 접어든 듯하다. 이 회사가 안식월 제도를 처음 시행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안식월 휴가를 다녀온 이들은 모두 496명으로, 전체 대상자 941명의 52%에 이른다. 올해 안식월 휴가 대상자군은 기존 미사용자와 신규 대상자를 합해 1300여명에 이른다. SK텔레콤은 “해마다 인력관리실에서 대상자를 선정해 통보하고 사용 계획을 받아 부서·개인의 사정을 감안해 시행하고 있으며, 회사 차원에서 적극 장려하는 분위기여서 사용률이 높은 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로 입사 만 10년을 맞은 이민선(29)씨는 올해 7~8월 안식월 휴가를 통해 두 가지 소원을 풀었다. 그는 7월 한달 동안 배낭 하나 짊어지고 이탈리아,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역을 구석구석 다니며 ‘서른살 되기 전의 해외 배낭여행’ 꿈을 이뤘다. 이씨는 귀국 뒤 부모님을 모시고 일주일 일정으로 타이 여행까지 다녀왔다. 그는 “해외여행 중에 만나는 이들에게 ‘회사를 그만둔 게 아니고 두달 휴가 받아 왔다’고 하면 다들 놀라며 부러워하는 눈치더라”며 웃었다.

제조업체에선 매우 드물어

이씨는 휴가 중 영국 런던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인상 깊은 추억을 남겼다. 그가 런던에 머문 것은 7월5일. ‘런던 테러’ 참사가 터지기 이틀 전이었다. 묵은 곳은 공교롭게도 테러로 박살난 러셀스퀘어역 근방의 호텔이었다. 테러 당시 다행히 이씨는 벨기에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테러 소식 뒤 가슴을 쓸어내린 그는 “한달 내내 불안을 떨쳐내기 어려웠다”며 웃었다.

SK텔레콤 같은 안식월제가 국내에선 아직 흔치 않다. 삼성, LG 등 최상위권 그룹의 계열사에서도 안식월제를 도입한 예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10년 근속한 이들에게 소정의 수당을 지급할 뿐이다.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2000년대 초반 광고기획사를 중심으로 조금씩 싹을 보였던 안식월 제도는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거나 사실상 중단된 예가 많다.

LG애드는 2002년 ‘리프레시 제도’를 도입해 지난해까지 사내 12명의 광고제작팀장(CD)을 대상으로 다달이 1명에게 유급 안식월 휴가를 다녀오도록 했다가 올해 들어 중단했다. 이 회사 류효일 부장은 “광고주별로 담당자가 정해져 있는 전담 체제이다 보니 누가 하나 빠지면 클라이언트(광고주)들한테서 불편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며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우리 역시 처음엔 서로 주저주저하며 잘 안 가는 분위기였다”며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 없이는 지속되기 어려운 제도”라고 말했다.

서비스 업체들에선 그나마 안식월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라도 간혹 볼 수 있지만, 제조업체에선 이마저 드물다. 업무 공정 탓에 한 사람이라도 빠질 경우 생기는 공백과 차질이 크기 때문인 듯하다. SK(주)의 경우 SK텔레콤과 같은 계열이면서도 많은 차이를 보이는 건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SK(주)는 안식월 제도를 두지 않고 부장급 이상에게 6개월~1년의 안식년을 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급여는 기본급 일부만 지급된다고 회사쪽은 밝혔다. 지난해 11월 도입한 이 제도에 따라 안식년 휴가를 이용하고 있는 이들은 5명에 지나지 않는 실정이다.

제조업체에서 안식월 제도를 도입해 꾸준히 시행 중인 드문 예는 동국제강이다. 이 회사는 ‘경영연수제도’를 통해 회사 임원이나 차장급 이상 중간 경영자들에게 한달 동안 일상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기계발과 재충전의 기회를 주고 있다. 1개월 유급휴가에는 500만원의 경비가 현금으로 별도 지원된다. 시행 첫해인 2002년부터 해마다 5~6명이 안식월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고 회사쪽은 밝혔다. 경비 지원은 파격적이나, 역시 그다지 활성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아빠가 실업자 아니니?”

이렇게 안식월 제도가 드물다 보니 휴가자들은 웃지 못할 일을 겪기도 한다. 올해 6~7월에 걸쳐 한달 동안 안식월 휴가를 쓴 SK텔레콤의 원홍식(38) 차장은 실직자로 오인받는 일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하루는 동네 슈퍼 아주머니가 초등학교 다니는 우리 아이한테 아이스크림을 그냥 주더랍니다. 아빠가 실직한 줄 알고…. 토익(TOEIC) 공부한다고 영어 학원엘 다녔는데, 학원 강사가 ‘공무원 시험 준비하냐’고 묻더군요, 하하.” 가장 오래전부터 파격적인 조건으로 안식월 제도를 도입·시행하고 있는 곳은 뜻밖에도 직원 수 70~80명 규모의 인컴브로더(대표 손용석)이다. 홍보대행사인 인컴브로더는 1993년 설립 때부터 3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에게 안식월 휴가를 가도록 해 연봉의 10% 안에서 교통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항공료, 열차요금 등 교통비만 지원해주는 것은 나라 밖으로 두루 다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회사의 안식월 제도는 1회에 그치는 게 아니고, 3년마다 갈 수 있으며 해마다 5~6명이 이를 활용하고 있다. 회사 설립자인 손용석 사장은 “1984년부터 1990년 말까지 삼성물산에서, 그 뒤 3년쯤 나라기획에서 직장 생활을 했는데, 안식월 같은 장기 휴가 제도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해마다 대여섯명이 가는데다 연봉의 10%까지 교통비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한해 1명을 추가로 고용하는 정도의 비용 부담을 지게 된다”면서도 “비용 이상의 효과를 보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업계(홍보대행)에선 3년 이상 근무한 이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 회사에는 3년 이상 근무자들이 절반을 훨씬 넘습니다. 그게 회사로선 큰 득입니다.

5~7년씩 비교적 오래 근무하다 보니 고객쪽 담당자가 바뀌어도 우리쪽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게 강점으로 작용합니다. 전문지식을 쌓기에도 유리하고….” 손 사장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탰다. “세계 여러 나라를 두루 여행하면서 문화적인 수준을 높이게 되는데다 심성도 맑아지기 때문에 직원들이 고객들로부터 리스펙트(존중)를 받게 됩니다. 휴먼 파워(인적 자원) 수준이 높아져 전반적인 업무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거죠.” 직원들의 근속 연수가 늘어나면서 알게 모르게 직원들의 로열티(회사에 대한 충성도)와 전반적인 수준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지난 2000년 인컴브로더에 입사한 최윤정(31) 과장이 안식월 휴가를 떠난 건 지난해 6월. 최 과장은 6월 한달 동안 유럽 6개국과 캐나다, 미국까지 돌았다. 국내에 돌아와 항공료, 지하철 요금 등 교통비를 정산했더니 280만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물론, 전액 회사에서 지원받았다. 최 과장은 “3년 이상 근무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 재충전하고 많이 배워오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며 “실제 다녀오고 보니 회사에 대한 애착도 많이 생겨 이것만큼 좋은 제도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체코 프라하에서 오페라를 비롯한 갖가지 공연을 값싸게 많이 본 게 제일 좋았다”고 덧붙였다.

노사 상생 모델의 바탕

노사 상생 모델로 유명한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사장이 새로운 경영 모델을 도입한 바탕에는 안식년 휴가가 깔려 있었다고 한다. 문 사장은 입사 10년 만인 1980년대 초반 직원으로선 처음으로 회사에 안식년을 요구해 해외 연수를 감으로써 인간 존중 경영에 눈을 뜬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문 사장이 1990년대 초반까지 3조3교대였던 근무 방식을 4조3교대 또는 4조2교대로 차츰 바꾸면서 적절한 휴식과 교육을 통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인 일은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안식월·안식년이 전반적으로 확산돼 직원 재충전과 생산성 향상의 선순환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직 섣부른 바람일까?




공조직은 ‘안식년’ 검토
희망자를 자율적으로 선발해 국내·외 대학 등에서 연수하도록 하는 방안
장기 휴가의 형태가 사기업체에서 ‘안식월’ 제도로 싹을 보이고 있다면, 공조직에선 ‘안식년’ 제도에 대한 검토가 주로 이뤄지고 있다. 물론 대학이나 정부 출연연구기관을 빼고는 아직 초보적인 논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중앙인사위원회는 일정 기간 근무한 공직자 가운데 희망자를 선발해 자율적으로 국내·외 대학과 연구소, 기업 등에서 연수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올해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중앙인사위 업무 보고 때 “공무원 안식년제 도입 방안을 검토할 것”을 지시한 데 따른 것으로, 기존 질병·유학·육아 휴직 등과는 별도의 제도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선 이미 제도를 도입한 예가 있다. 대전 대덕구청은 올해 들어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공무원 휴식년제’를 도입해 하반기부터 신청자를 받고 있다. 대덕구청은 10~20년 근무한 공무원 중 희망자를 선발해 해외유학은 최대 3년, 국내 대학과 연구소에서 공부할 때는 2년까지 휴직을 허용하고 소정의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그렇지만 아직 신청자는 없는 실정이다. 휴식 기간에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 탓에 쉽사리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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